자식들 다 보내고
우리에게 찾아온 아이
그래서 더 힘들었습니다

“이 나이에 무슨 강아지야.”
처음에는 제가 더 반대했습니다.
애들도 다 키워서 시집, 장가 보내고 이제는 둘이 조용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잠깐 맡아달라며 데려온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 집에 눌러앉게 됐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아이가 우리 노후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줄은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아이가
우리 둘의 하루가 될 줄은요.
집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원래 저희 부부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닙니다.
아침 먹고.
신문 보고.
TV 보고.
동네 한 바퀴 돌고.
그러면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오고 나서는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 먼저 밥을 챙겨야 했고,
마트를 가면 간식을 사 오게 되고,
저녁을 먹고 나면 자연스럽게 산책을 나가게 됐습니다.
별거 아닌데 웃을 일이 많아졌습니다.
남편도 원래는 무뚝뚝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강아지한테는 하루 종일 말을 걸었습니다.
“우리 강아지 밥 먹었어?”
“산책 갈까?”
“아빠 기다렸어?”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많이 웃었습니다.

자식 키울 때와는 또 다른 마음이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식은 키우면서 바쁩니다.
학교 보내고.
직장 보내고.
결혼시키고.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노년의 반려동물은 조금 다릅니다.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많습니다.
아침에도 보고.
점심에도 보고.
저녁에도 보고.
TV 볼 때도 옆에 있고.
낮잠 잘 때도 옆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강아지가 아니라
우리 둘의 하루 자체가 되어버렸던 것 같습니다.
강아지를 키운 게 아니라,
함께 하루를 살았던 것 같습니다.
장례를 마친 날보다 그 다음 날이 더 힘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장례를 하는 날이 가장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많이 울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다음 날이 더 힘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습관처럼 밥그릇을 찾았습니다.
현관문을 열면 뛰어나올 것 같았습니다.
산책 시간이 되니까 몸이 먼저 움직이더라고요.
그런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집이 이렇게 조용할 수도 있다는 걸.

밥 먹다가 둘 다 울었습니다
한참 지나서도 기억나는 날이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식탁 밑에 와서 앉아 있었을 자리였습니다.
습관처럼 저도 보고,
남편도 봤습니다.
둘 다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숟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평생 같이 살면서
남편 우는 걸 몇 번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저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둘이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사랑했구나.
그 아이는 반려견이 아니라,
우리 부부의 일상이었습니다.
손주가 했던 한마디
손주가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습니다.
현관으로 들어오자마자 물었습니다.
“할머니, 강아지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는 모르니까요.
왜 안 보이냐고 계속 묻는데 설명하면서도 울컥했습니다.
그날 이후로도 그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때 알게 된 말이 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펫로스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요.
처음에는 거창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가 겪었던 시간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계속 생각나고.
괜히 죄책감이 들고.
더 잘해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도 있었습니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는데 마음이 텅 빈 것 같았습니다.
반려동물 상실감은 사랑한 만큼 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그렇게 생각합니다.
너무 힘든 게 이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같이 산책했던 시간.
같이 TV 보던 시간.
같이 밥 먹던 시간.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사라졌으니까요.
그래서 펫로스를 겪는 분들에게는
“이제 그만 잊어야죠.”
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아직도 가끔 현관을 봅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그렇습니다.
아직도 가끔 현관문을 열면 잠시 기다리게 됩니다.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것 같아서요.
산책줄도 아직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자식들 다 키워 보내고,
둘만 남았던 집에
다시 웃음소리를 가져다준 아이였습니다.
우리 부부가 더 많이 이야기하게 만들었고,
더 많이 걷게 만들었고,
더 많이 웃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이야기합니다.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마웠다.”
아마 그 말이
평생 가장 하고 싶은 말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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