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강아지장례식장을 검색해보고, 가장 근접한 경기광주점을 찾았습니다.
장례는 하루 만에 끝났지만, 이별은 집에 돌아온 뒤에도 계속됐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하남 집으로 돌아온 지 나흘째다.
아직도 현관 옆에는 목줄이 걸려 있다.
치워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손이 가지 않는다.
10년 동안 거의 매일 저 목줄을 들고 현관 앞에서 이름을 불렀다.
산책을 좋아했던 웰시코기라 목줄에 손만 대도 어디선가 발톱 소리를 내며 뛰어왔다.
지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장례식장에서는 정신이 없었다.
상담을 받고,
아이를 정돈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화장로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유골을 확인하고,
유골함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고 나니 해야 할 일이 없어졌다.
오히려 그때부터 아이가 없다는 사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장례는 정해진 절차를 마치면 끝나지만, 함께 살던 집에는 아이의 시간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흔적을 언제 정리할지는 누구도 정해줄 수 없습니다.
첫째 날 — 현관문을 열었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것은 저녁이었다.
하남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둘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갈 때는 아이와 함께였다.
돌아올 때는 작은 유골함 하나가 있었다.
아내가 유골함을 안고 있었고 나는 운전만 했다.
집에 도착해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이 열리는 순간 이상하게도 잠깐 기다렸다.
습관이었다.
우리 아이는 현관문 소리가 나면 언제나 거실에서 뛰어나왔다.
웰시코기 특유의 짧은 다리로 미끄러지듯 달려와 발밑을 빙빙 돌았다.
그날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집은 장례식장으로 출발했을 때 그대로였다.
거실에는 아이가 마지막으로 누워 있던 패드가 있었고 물그릇에는 물이 남아 있었다.
아침에 먹지 못한 사료도 그대로였다.
나는 유골함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들고 서 있었다.
결국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거실 창가 근처에 작은 테이블을 놓고 그 위에 두었다.
그날은 아무것도 치우지 않았다.
물도,
사료도,
패드도,
목줄도 그대로 두었다.
둘째 날 — 산책하던 시간이 가장 이상했다
아침 6시 40분.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 눈이 떠졌다.
10년 동안 거의 같은 시간에 일어났기 때문인 것 같다.
아이가 젊었을 때는 일어나자마자 산책을 나갔다.
나이가 든 뒤에는 걷는 거리가 많이 짧아졌다.
예전에는 한참을 걸어도 집에 들어가기 싫어했는데 마지막 몇 달은 아파트 단지 한 바퀴를 다 돌지 못했다.
그래도 밖에 나가는 건 좋아했다.
미사 쪽으로 이사 온 뒤에는 산책할 곳이 많아졌다.
아파트 단지 사이 보행로를 천천히 걷기도 했고,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조금 더 길게 나갔다.
아이의 걸음이 느려진 뒤부터는 거리가 중요하지 않았다.
냄새를 맡고 싶으면 기다렸고,
가만히 서 있으면 나도 옆에 서 있었다.
그날 아침도 습관처럼 현관 쪽을 봤다.
목줄은 그대로 걸려 있었다.

한번 손을 뻗었다가 그냥 내려놓았다.
그제야 전날 장례식장에서 장례지도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이 물건을 당장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때는 그 말이 왜 필요한지 잘 몰랐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알 것 같았다.
장례를 마쳤다고 생활의 습관까지 하루 만에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셋째 날 — 마지막 날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봤다
조금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장례 당일이 뒤늦게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날은 정말 갑작스러웠다.
아침까지만 해도 밥을 먹었다.
평소보다 조금 덜 먹기는 했지만 10살이 되면서 그런 날은 종종 있었다.
저녁이 되어 상태가 급격히 달라졌다.
그리고 우리가 제대로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아이는 떠났다.
장례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휴대전화로 처음 검색했던 것이 하남 강아지장례식장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몰랐고,
하남에 있는 시설을 찾아야 하는 건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건지,
그 시간에 장례가 가능한지도 몰랐다.
비용도 전혀 몰랐다.
무엇보다 아이를 지금 바로 데리고 나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상담하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이야기는 장례식장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이를 평평한 곳에 편안하게 눕히고 실내를 서늘하게 유지하는 방법부터 안내받았다.
그때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지금 해야 하는 일이 하나 생겼기 때문이다.
하남이라는 주소보다 그날 출발한 위치가 중요했다
우리가 있던 곳은 미사 생활권의 아파트였다.
하남이라고 해도 지역에 따라 이동 환경은 꽤 다르다.
미사·망월동처럼 대규모 아파트가 밀집한 곳도 있고, 신장·덕풍처럼 오래된 도심 생활권도 있다.
감일이나 위례 쪽에서 출발하는 경우와 경기광주 방향에 가까운 하남 동쪽 생활권에서 출발하는 경우도 실제 이동 경로가 달라질 수 있다.
장례식장을 알아보면서 알게 된 것은 행정구역상 하남에서 얼마나 가까운가보다 그 시간에 실제로 어느 경로로 이동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남은 서울 동부와 연결되는 도로 이용도 많고, 시간대에 따라 주요 도로 상황도 달라진다.
특히 갑작스러운 이별 직후에는 평소 운전하던 길도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도 처음에는 직접 운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담하면서 픽업 가능 여부와 직접 이동하는 경우의 경로를 함께 확인했다.
아이의 체중,
현재 위치,
출발 가능한 시간,
차량 이용 여부,
픽업이 필요한지를 하나씩 이야기했다.
그날은 그런 질문들이 고마웠다.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라 지금 상황을 정리하게 만드는 질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용을 물어봤던 순간도 기억난다
처음에는 돈 이야기를 꺼내기가 이상하게 미안했다.
아이가 방금 떠났는데 장례비부터 묻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갑작스러운 장례인데 비용을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해피엔딩의 기본 개별 화장 비용은 체중에 따라 구분되어 있었다.
- 1kg 미만: 18만원
- 5kg 미만: 20만원
- 10kg 미만: 23만원
- 15kg 미만: 26만원
- 20kg 미만: 30만원
- 20kg 이상: 30만원에 초과 1kg당 2만원 추가
기본 유골함은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아이는 웰시코기라 몸집이 작아 보이지 않았고 털도 많았다.
마지막 병원에서 확인했던 체중을 이야기했지만 실제 비용은 시설에서 다시 체중을 확인한 뒤 결정됐다.

기본 장례비와 이동에 필요한 비용, 선택할 수 있는 항목도 따로 설명받았다.
특수 유골함이나 메모리얼 스톤 같은 것은 선택이었다.
그날은 기본 유골함으로 결정했다.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그때 생각하기로 했다.
돌아보면 그게 좋았다.
슬픔이 가장 큰 날에 앞으로 아이의 유골을 어떻게 할 것인지까지 모두 결정했으면 지금 후회했을지도 모르겠다.
넷째 날 —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려봤다
오늘 아침에는 장례식장에서 아이를 정돈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웰시코기는 다리가 짧고 몸통이 길다.
우리 아이도 몇 년 전부터 허리가 좋지 않았다.
소파에서 뛰어내리지 못하게 계단을 놓았고, 산책 후에는 가끔 뒷다리를 불편해했다.
장례지도사는 아이의 몸을 정돈하기 전에 생전에 허리나 관절이 불편했는지 먼저 물었다.
그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떠난 뒤에도 생전에 아팠던 곳을 먼저 생각해준다는 것이 이상하게 고마웠다.

몸을 여러 번 움직이지 않고 허리 전체를 받치면서 털과 얼굴, 발 주변을 정돈했다.
아내가 얼굴을 한번 닦아주고 싶다고 했다.
작은 천을 받아 직접 했다.
나는 하지 못했다.
그냥 옆에서 보고 있었다.
그때는 내가 아무것도 못 해주는 것 같아 미안했다.
며칠 지나 생각해보니 꼭 손으로 무엇인가 해야 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것으로 됐던 것 같다.
끝까지 보겠다고 한 것은 나였지만, 중간에 나간 것도 나였다
장례 전에 나는 모든 과정을 보겠다고 했다.
다른 아이와 함께 화장되는 것은 아닌지,
정말 우리 아이만 개별 화장하는지,
유골은 어떻게 수습되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해피엔딩에서는 보호자가 원하면 염습과 입관, 화장로 이동, 개별 화장 전 확인, 유골 수습과 기본 유골함 전달까지 100% 참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함께 봤다.

그런데 화장로 앞에 섰을 때 생각이 달라졌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는 봤다.
그다음에는 잠시 밖으로 나왔다.
아내는 남아 있었다.
나중에 다시 들어가 유골 수습 과정은 함께 봤다.
그날은 중간에 나왔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끝까지 봐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며칠 지나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100% 참관할 수 있다는 말은 보호자가 모든 장면을 반드시 봐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볼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어디까지 볼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 순간의 나는 잠깐 밖으로 나오는 것이 필요했다.
지금은 그것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오늘 처음으로 밥그릇을 씻었다
나흘째가 되어서야 밥그릇을 들었다.
사료는 첫날 그대로 있었다.
버리려고 했는데 손이 멈췄다.
마지막으로 먹던 사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료는 버렸다.
밥그릇은 씻었다.
10년 동안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씻었던 그릇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오래 걸렸다.
씻고 나서 원래 자리에 다시 놓았다.
아직 치우지는 않았다.
물그릇도 씻었다.
패드는 정리했다.
하지만 목줄은 그대로 두었다.
장난감도 그대로다.
아이의 털이 붙어 있는 방석도 아직 거실에 있다.
아내가 물었다.
“이것도 치울까?”
나는 조금 더 두자고 했다.
아내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에는 순서가 있는 것 같다.
누가 정해주는 순서는 아니다.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하나 치우고,
아직 못 하겠는 것은 그대로 두는 순서다.
사진을 정리하다가 장례식장 사진에서 멈췄다
휴대전화 사진도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이 사진이 정말 많았다.
미사에서 산책하던 사진,
집 근처에서 눈을 맞던 사진,
차를 타고 나갔던 사진,
소파에서 자던 사진,
병원 대기실에서 나를 노려보던 사진.
마지막에는 장례 당일 찍은 사진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 사진을 지울까 생각했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모습은 건강하게 뛰어다니던 아이였으니까.
그런데 지우지 않았다.
그날도 우리 아이의 10년 중 하루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하루라고 해서 없었던 일로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사진을 한 장씩 넘기다 보니 장례식장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이 뒤늦게 떠올랐다.
조금 더 산책해줄 걸.
마지막 몇 달 동안 귀찮아하지 말 걸.
병원에 갈 때 짜증내지 말 걸.
그러다 또 생각했다.
10년 동안 잘했던 일도 많았다.
매일 밥을 줬고,
아프면 병원에 갔고,
비가 와도 산책을 나갔고,
늙어서 걷는 속도가 느려졌을 때 같이 천천히 걸었다.
마지막 날의 몇 시간만으로 10년을 평가하지 않기로 했다.
장례가 끝난 뒤에야 알게 된 것
장례 당일에는 좋은 장례가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며칠 지나 돌아보니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의외로 단순했다.
비용을 시작 전에 알 수 있었던 것.
원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지 않아도 됐던 것.
아이를 어떻게 정돈하는지 볼 수 있었던 것.
다른 아이와 함께가 아니라 우리 아이만 개별 화장되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내가 힘들 때 잠깐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
장례 절차 자체는 몇 시간 만에 끝났다.
하지만 그 과정이 투명했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 그때 제대로 했던 걸까라는 의심은 적었다.
슬픈 것과 후회하는 것은 조금 다른 감정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지금은 많이 슬프다.
그래도 장례 과정 때문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섯째 날 — 내일은 산책길을 혼자 걸어볼 생각이다
목줄은 아직 현관에 있다.
내일 아침에는 혼자 산책길을 한번 걸어볼 생각이다.
아이와 항상 걷던 길이다.
아마 이상할 것 같다.
자꾸 옆을 보게 될 것 같다.
그래도 한번 걸어보려고 한다.
아이를 잊으려고 걷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억하기 위해서다.
하남에서 함께 살았던 10년은 장례식장에서 끝난 것이 아니니까.
미사든 덕풍이든 신장이든 감일이든, 반려동물과 오래 함께 살았다면 동네 곳곳에 아이와 연결된 장소가 남는다.
매일 걷던 길,
늘 냄새를 맡던 나무,
잠깐 쉬던 벤치,
병원으로 가던 길.
아이를 떠나보낸 뒤에는 그런 평범한 장소들이 한동안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그것도 이별의 일부인 것 같다.
하남에서 갑작스럽게 아이를 떠나보내게 된다면
이 글을 읽는 분이 지금 막 아이를 떠나보낸 상황이라면 아마 나처럼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고 검색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날로 돌아간다면 한 가지는 똑같이 할 것 같다.
혼자 전부 판단하려고 하지 않는 것.
아이의 상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 이동해야 하는지,
하남 현재 위치에서 어느 시설로 이동할 수 있는지,
직접 운전할지 픽업을 이용할지,
체중에 따른 기본비용은 얼마인지,
개별 화장인지,
어디까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지를 하나씩 물어보는 것이다.
해피엔딩은 24시간 365일 상담을 통해 하남의 현재 위치와 아이의 상태, 직접 이동과 픽업, 체중별 기본비용, 진행 가능한 시설과 개별 화장·참관 범위를 안내한다.
그리고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의 물건을 바로 치우지 않아도 된다.
사진을 바로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
유골함을 앞으로 어떻게 할지도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 밥그릇 하나를 씻을 수 있다면 그것만 해도 된다.
목줄은 아직 못 치우겠다면 그대로 두어도 된다.
장례는 하루 만에 끝났지만,
10년 동안 함께 만든 일상과 헤어지는 데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아직 그 시간을 지나고 있다.
더 알아보고 싶으시다면
반려동물과의 시간을
조금 더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처음 함께하는 일상부터 노령기 돌봄, 이별 준비와 장례까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모든 시간을 조금 더 따뜻하고 덜 후회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차분히 정리해두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