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에서 강아지장례를 알아보던 날, 저희 네 식구는 같은 화면을 보면서도 조금씩 다른 얘기를 했습니다. 반려동물 장례 절차를 찾아보다가도 결국 다시 돌아오는 건 하나였어요. 아이를 보내고 나서, 그다음엔 어떻게 할 건지였습니다.
누군가는 따로 찾아갈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고, 누군가는 집에 같이 두는 게 낫겠다고 했습니다. 저도 쉽게 결론이 나지는 않았어요. 집에 두자고 마음이 기울다가도, 막상 어디에 둘 건지 생각하면 또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희 강아지는 열두 살 웰시코기였고, 몸무게는 12kg이었습니다. 함께 산 시간도 12년이었고요. 분당구 집에서 아이들은 늘 그 아이를 먼저 보고 자랐다고 해도 될 만큼, 그냥 집에 늘 있는 식구였습니다.
먼저 정한 건 네 식구가 같이 가자는 거였어요
해피엔딩에 전화해서 체중과 이동 방법부터 말씀드렸습니다. 기본 화장비는 할인 없이 26만 원이었고, 관이나 꽃장식, 별도의 유료 수의는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봉안당이냐 스톤이냐는 전화 한 번으로 바로 정해지지 않았어요. 저는 따로 관리되는 장소가 있다는 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가족은 집에서 같이 기억하는 쪽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찾아가야 하는 거리나 시간, 집에 두게 되면 어느 자리에 둘지 같은 얘기를 하다가, 이번에는 메모리얼 스톤으로 하자는 쪽으로 정리가 됐습니다.
스톤 제작비는 20만 원이 추가됐고, 기본 화장 26만 원까지 해서 총 46만 원이었습니다. 유골양이 많을경우, 유골 전체를 스톤으로 만들때 시간, 비용이 많이들어, 일부만 사용한 뒤 나머지는 기본 유골함에 담아 함께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장례 당일에는 네 명이 자차로 갔습니다. 도착해서 아내와 제가 담요 양쪽을 받치고, 장례지도사 도움을 받아 아이를 옮겼습니다. 큰아이는 옆에서 그 모습을 휴대전화로 한 장 남겼고요. 저희를 방해하지 않게 조금 떨어져 있다가 조용히 찍는 모습이 오히려 더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저도 그냥 옆에 있었어요
몸을 닦고 털을 정돈하는 과정부터 같이 봤습니다. 짧은 다리를 받쳐 주고 몸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는 손길을 다 같이 보고 있었어요. 둘째는 한 번 가까이 갔다가, 작업하는 손 가까이에 서 있는 게 조심스러웠는지 다시 뒤로 물러났습니다.
솔직히 저는 아이들이 중간에 힘들어하면 잠깐 밖에 나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둘 다 그냥 그 자리에 있더라고요. 큰아이는 몇 장 찍은 뒤에는 휴대전화를 내렸고, 둘째도 묻고 싶은 게 생기면 짧게 묻고 다시 봤습니다.

정돈을 마친 뒤에는 기본으로 제공되는 흰 한지 수의로 몸을 감쌌습니다. 발과 꼬리까지 안으로 들어가게 정리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동안에는 얼굴 쪽을 조금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둘째가 한지 위에 손을 살짝 올렸고, 아내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옆에 서 있었고요. 네 사람이 있다고 해서 다 같이 비슷한 말을 하거나, 차례를 정해 인사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조용한 시간이 길었어요.
그 시간이 어색하다기보다는, 각자 아이를 보고 있는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싶다가도, 막상 그 자리에서는 그런 말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충분히 인사한 뒤에 다음 절차로 넘어갔습니다.
참관창 앞에서도 네 식구가 같이 있었어요
화장 준비를 할 때는 얼굴까지 한지로 덮었습니다. 관 없이 몸 전체를 감싼 상태로 준비대에 놓인 모습을 창 너머로 봤습니다.
참관창은 아래쪽이 벽으로 가려져 있고 위쪽만 유리였어요. 검정 커튼이 걷혀 있었고, 안쪽은 밝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흰 한지에 감싼 모습과 설비는 보이는 정도였어요. 저희는 구분된 보호자 공간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큰아이가 제 옆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 다시 휴대전화를 내렸습니다. 둘째도 창 앞에서 한동안 가만히 보고 있었고요. 제가 먼저 고개를 돌렸을 때도 아이들은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개별 화장이 끝난 뒤에는 유골을 수습하는 과정도 봤습니다. 크기가 조금씩 다른 뼛조각과 작은 파편, 가루가 함께 있었습니다. 장례지도사가 그것들을 모으는 동안 저희 네 식구도 테이블 앞에 같이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이 장면을 피하지는 않았어요. 궁금한 게 있으면 짧게 물었고, 설명을 들은 뒤 다시 봤습니다. 저는 괜히 말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때는 그냥 같이 보고 있는 쪽이 더 나았습니다.
스톤만 받는 건 아니라는 게 그때 더 실감났어요
수습과 분골 과정을 거친 뒤 일부 유골로 스톤을 만들고, 남은 유골은 기본 유골함에 담는 순서로 이어졌습니다.

완성된 스톤은 생각보다 작았습니다. 손끝에 놓일 만한 작은 알들이었고, 크기나 빛깔도 조금씩 달랐습니다. 사진으로 먼저 보는 것과 직접 가까이서 보는 건 또 느낌이 달랐어요. 큰아이가 이번에는 가까이에서 사진을 남겼습니다.
남은 유골을 담은 기본 유골함은 무늬 없는 아이보리색이었습니다. 보자기로 감싸 매듭을 짓는 걸 보고, 스톤이 담긴 용기와 함께 챙겼습니다. 스톤을 선택하긴 했지만, 손에 들고 돌아가는 건 결국 두 가지라는 게 그때 더 또렷하게 느껴졌습니다.
봉안당이 덜 좋은 방법이라고 결론 낸 건 아닙니다. 지금도 따로 찾아갈 자리가 있는 방식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다만 이번에는 네 식구가 집에서 같이 볼 수 있는 쪽이 더 맞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꼭 누가 맞고 틀린 문제처럼 정리할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집에 와서도 한 번 더 자리를 바꿨어요
집에 돌아와 보자기를 풀고 유골함과 스톤 용기를 같이 놓아봤습니다. 처음에는 한쪽 선반에 두려고 했는데, 막상 놓아보니 가족이 오가며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자리가 더 낫겠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끝까지 같이 있어 준 게 고마웠습니다. 그렇다고 그날 하루로 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지금도 각자 생각날 때 가까이 가서 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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