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왔어.”
현관문이 열렸는데 평소처럼 발톱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17년 동안 딸이 집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현관으로 나오던 말티즈였습니다.
나이가 들고 걸음이 느려진 뒤에도 현관까지 오는 건 빼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지막 몇 달은 한 번에 나오지 못해서 거실에서 쉬었다가, 중간쯤 다시 걷고, 그렇게라도 꼭 얼굴을 보러 왔습니다.
그날 밤에는 오지 않았습니다.
거실에 들어온 딸은 바닥에 누워 있는 아이 옆에 그대로 앉았습니다.
부모님은 이미 한동안 그 옆에 계셨습니다.
장례식장에는 조금 전 전화를 해둔 상태였습니다.

17년을 같이 살았는데 한 시간 정도는 기다리고 싶었습니다
아이 아래에는 흡수 패드를 깔고, 수건으로 감싼 보냉팩을 피부에 직접 닿지 않게 두었습니다.
실내 온도를 낮추고 몸을 자꾸 옮기지 않도록 안내했습니다.
계절과 실내 온도, 아이의 상태에 따라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화로 현재 상태를 먼저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가족은 딸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이 옆에 앉아 얼굴을 만지고 있다가 휴대전화 사진을 계속 넘겨봤습니다.
17살이다 보니 사진도 많았습니다.
최근 사진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학생 때 찍은 사진도 있었고, 예전 휴대전화에서 옮겨온 화질이 작은 사진도 있었습니다.
그중 한 장을 보다가 딸이 웃었습니다.
“얘 이때 진짜 못생겼었는데.”
어머니도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웃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아무 말이 없던 거실에서 처음 나온 웃음이었습니다.
슬픈 날이라고 해서 가족이 계속 울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래 함께 산 아이의 장례에서는 사진 한 장 때문에 갑자기 예전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합니다.

출발하려는데 이번에는 아버님이 다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가족이 모두 모였으니 이제 출발하면 됐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데리고 현관으로 나가려니 아버님이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방으로 들어갔다가 작은 빗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평소 아이 털을 빗겨주던 빗이라고 했습니다.
“이거 가져가도 됩니까?”
가져가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가족이 챙긴 물건은 많지 않았습니다.
사진 몇 장.
딸이 쓴 편지.
그리고 오래 사용한 작은 빗.
경기광주에서 출발할 때는 현재 위치와 이동 경로, 도착 후 진행 가능한 시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늦은 밤이라 ‘24시간 상담이 된다’는 것과 ‘도착하자마자 모든 절차가 시작된다’는 것은 구분해서 안내했습니다.
가족에게 필요했던 것은 복잡한 설명보다 간단한 순서였습니다.
지금 출발해도 되는지.
어디로 가면 되는지.
도착하면 무엇부터 하는지.
그 세 가지를 확인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다시 보니 정말 작아져 있었습니다
17살 말티즈였습니다.
예전 사진에서는 털이 풍성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몇 달 동안 체중이 많이 줄었다고 했습니다.
장례를 준비하면서 실제 체중을 확인하니 가족이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던 몸무게와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노령견 장례에서 종종 있는 일입니다.
보호자는 건강했을 때의 체중을 기억하지만, 투병 기간이 길었던 아이는 마지막에 몸이 상당히 줄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해피엔딩의 개별 화장 기본 비용은 실제 체중을 기준으로 확인합니다.
- 1kg 미만 180,000원
- 5kg 미만 200,000원
- 10kg 미만 230,000원
- 15kg 미만 260,000원
- 20kg 미만 300,000원
- 20kg 이상 300,000원에 초과 1kg당 20,000원 추가
기본 유골함은 포함됩니다.
야간 진행이나 이동, 별도 추모용품처럼 추가될 수 있는 항목은 기본 비용과 따로 설명합니다.
이날도 가족에게 필요한 항목과 선택할 수 있는 항목을 구분해 안내했습니다.

“아빠, 그 빗 주세요.”
아이의 눈가와 입 주변을 정돈할 때였습니다.
오랫동안 누워 있었기 때문에 한쪽 털이 조금 눌려 있었습니다.
피부가 약한 노령견이라 세게 빗지 않고 부드러운 거즈로 얼굴 주변부터 닦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딸이 아버님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아까 그 빗 주세요.”
경기광주 집에서 챙겨온 그 작은 빗이었습니다.
딸이 직접 얼굴 옆 털을 몇 번 빗었습니다.
많이 빗지는 않았습니다.
말티즈 털이 다시 풍성해지는 것도 아니고, 17살의 흔적을 없애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평소 집에서 해주던 행동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하는 정도였습니다.
아버님은 옆에서 보고 계셨고 어머님은 아이 앞발을 만지고 있었습니다.
누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정해놓은 장면은 아니었습니다.
각자 익숙한 방식으로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편지를 읽다가 가족이 또 한 번 웃었습니다
딸이 써온 편지를 아이 옆에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읽으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무슨 내용인지 물었습니다.
결국 몇 줄을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어릴 때 몰래 간식을 줬던 이야기.
시험공부할 때 책상 아래에서 자던 이야기.
자기가 울고 있으면 이유도 모르면서 옆에 와 앉아 있던 이야기.
그러다가 편지 중간에 이런 내용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내 양말 좀 그만 훔쳐가지.”
아버님이 웃었습니다.
어머님도 웃었습니다.
딸도 울다가 웃었습니다.
장례 현장에서 이런 순간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17년의 기억이 모두 슬픈 장면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래 함께한 아이를 보내는 날에는
울다가도 예전 이야기에 웃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는 세 사람이 같은 곳에 서 있지 않았습니다
화장 전 식별 정보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해피엔딩은 다른 아이와 함께하지 않고 한 아이씩 개별 화장을 진행합니다.
가족이 원하면 정돈과 입관, 추모, 이동, 화장로 입로와 화장 후 유골 확인 및 수습까지 참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가족 모두가 끝까지 같은 방식으로 지켜보는 것은 아닙니다.
이날도 그랬습니다.
아버님은 조금 뒤에 서 있었습니다.
어머님은 아이가 이동하기 전까지 가까이 계셨습니다.
딸은 마지막까지 보겠다고 했다가 화장로 앞에서는 잠시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끝까지 보는 것이 더 많이 사랑했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곳까지 함께하면 됩니다.
광주 집으로 돌아가면 현관이 가장 먼저 보일 겁니다
화장이 끝난 뒤 유골을 확인하고 수습했습니다.
기본 유골함에 봉안한 뒤 가족에게 전달했습니다.
가져온 사진도 다시 챙겼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빗도 챙겼습니다.
가족이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아버님이 빗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가방에 넣었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아마 아침과는 전혀 다른 집처럼 느껴질 겁니다.
물그릇도 그대로 있을 것이고,
방석도 그대로 있을 것이고,
현관에는 아이가 사용하던 물건도 남아 있을 겁니다.
무엇부터 치워야 하는지 묻는 보호자도 많습니다.
하지만 장례를 마치고 돌아간 그날 바로 모든 것을 정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며칠 그대로 두는 가족도 있고,
물그릇 하나만 먼저 치우는 가족도 있고,
방석을 한동안 그대로 두는 가족도 있습니다.
17년 동안 한 집에 있던 흔적을 하루 만에 없앨 이유는 없습니다.
이날 경기광주에서 시작된 장례를 떠올리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늦은 밤이라는 시간도, 말티즈라는 견종도 아니었습니다.
처음 전화에서 들었던 한마디였습니다.
“딸이 올 때까지만 기다려도 될까요?”
결국 가족은 기다렸습니다.
딸이 왔고,
예전 사진을 함께 봤고,
집에서 사용하던 빗을 챙겼고,
장례식장에서 마지막으로 털을 빗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17년을 함께한 아이를 배웅했습니다.
더 알아보고 싶으시다면
반려동물과의 시간을
조금 더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처음 함께하는 일상부터 노령기 돌봄, 이별 준비와 장례까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모든 시간을 조금 더 따뜻하고 덜 후회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차분히 정리해두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