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강아지장례, 남편과 함께 고른 메모리얼 스톤과 마지막 인사

아이를 보내고 맞은 주말이에요. 남편은 소파에 앉아 있고 저는 식탁에서 이 글을 쓰고 있어요. 조금 전까지 사진첩을 같이 봤는데, 저는 자꾸 같은 사진에서 멈추게 되네요. 이불 위에 앉아 입을 살짝 벌리고 우리 쪽을 보는 사진이요.

우리 둘이 소파 양끝에 앉으면 꼭 가운데로 들어오던 아이였어요. 자리가 좁아도 굳이 비집고 들어와서는 한 사람씩 번갈아 쳐다봤답니다. 열세 살, 함께한 시간도 열세 해. 저희가 마흔을 넘는 동안 아이도 곁에서 나이가 들었어요. 진갈색 곱슬털과 가슴 쪽 회색빛 털을 쓰다듬으면 손끝에 걸리던 느낌이 아직 생생해요.

남편이 처음에는 “유골함에 담아서 같이 오면 되지 않을까?” 했어요. 저도 그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메모리얼 스톤 사진을 보고 나니 자꾸 다시 열어보게 됐어요. 둘이 싸우거나 누가 설득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다만 어떻게 집으로 데려오고 싶은지, 그 생각이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둘이 함께 물어보기로 했어요

양주 옥정동 집에서 강아지 장례를 알아보다 스타펫에 연락했어요. 예약을 하면서 아이가 4.6kg이라고 말씀드리고, 남편과 같이 가서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싶다고 했어요. 운전은 남편이 맡았고 저는 아이 곁에 앉아서 갔어요. 가는 길에는 미리 적어둔 질문을 다시 읽었는데, 막상 도착하니 휴대전화를 어디에 넣었는지도 잠깐 잊었어요.

상담 자리에서 사진첩을 열자 아이가 살아 있을 때 모습이 바로 나왔어요. 남편에게 화면을 돌려주고, 저는 스톤 이야기를 꺼냈어요. 남편은 그사이 창밖을 한 번 봤다가 다시 테이블 쪽으로 몸을 돌렸고요.

“오늘 장례하고 나서 바로 받을 수 있을까요? 추가 비용도 알고 싶어요.”

저희 아이는 화장 후 유골을 수습하고, 분골하기 전에 스톤 제작을 이어갈 수 있다고 안내받았어요. 제작에는 약 한 시간이 걸리고, 그날 받아서 귀가하는 일정으로 정했어요. 색은 미리 고르는 게 아니라고 하셨어요. 유골로 만드는 거라 어떻게 나올지는 만들기 전에는 알 수 없다고요.

저희가 선택한 비용은 기본 화장 20만원에 메모리얼 스톤 20만원을 더한 총 40만원이었어요. 기본 정돈과 한지 수의, 추모, 개별 화장을 진행하고, 유골은 스톤으로 받기로 했어요. 추가 수의나 관, 꽃장식은 선택하지 않았어요.

남편은 “그럼 기다렸다가 같이 데려가자”라고 했어요. 거창한 말을 주고받지는 않았는데 그 말이 참 고마웠어요. 저도 왜 스톤이 마음에 걸리는지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했거든요. 작은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남겨두고 싶다는 말만 했어요.

익숙한 진갈색 머리를 한 번 더 만졌어요

몸과 털을 정돈하는 동안 저희도 옆에 있었어요. 지도사님이 귀 주변을 받쳐가며 조심스럽게 닦고, 누운 몸을 편하게 정리해주셨어요. 평소에도 귀 아래쪽 털은 쉽게 뭉쳐서 제가 손으로 살살 풀어주곤 했는데, 그 부분을 보고 있으니 집에서 빗을 들고 앉아 있던 날들이 생각났어요.

하얀 한지로 몸을 감싼 뒤에는 얼굴이 조금 보였어요. 별다른 장식 없이 누워 있는 모습이 처음엔 낯설었는데, 가까이 가니 진한 머리털 아래로 조금 옅어진 턱 주변, 아래로 늘어진 귀가 정말 우리 아이더라고요. 사진을 남겨도 될지 망설이다 남편에게 몇 장만 부탁했어요. 지금 다시 보니 그때 손을 어디에 두고 있었는지까지 남아 있네요.

추모실에서는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고 한동안 그대로 있었어요. 무슨 말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았는데 생각만큼 말이 나오지 않았어요.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마워.” 그 말을 하다가 울고, 조금 진정되면 또 말을 걸었어요. 혼자 있는 낮에 조금 더 같이 있어줄 걸 하는 미안함도 있었고, 퇴근할 때마다 반겨주던 모습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남편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아이 옆으로 왔어요. 저는 자리를 조금 비켜줬고요. 둘이 동시에 인사를 마친 건 아니었어요. 남편이 먼저 손을 떼고 기다려줄 때 저는 아직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어요. 충분히 인사하고 나서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창 너머까지 같이 있었어요

화장 준비 때는 얼굴과 발까지 한지로 덮어주셨어요. 조금 전까지 만지던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그때 다시 울컥했어요. 저희는 보호자 쪽 참관창 앞에서 준비 과정을 봤어요. 아래쪽은 벽이고 위쪽에만 유리가 있어서, 검정 커튼을 걷으니 어두운 안쪽의 화장 설비와 한지로 덮인 아이가 보였어요.

저는 창틀에 한 손을 대고 있었고, 남편은 바로 옆보다 조금 뒤에 서 있었어요. 제가 뒤를 돌아보니 팔 윗부분을 가만히 짚어줬어요. 끝까지 함께 보자고 정했던 대로 그 자리에서 개별 화장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봤어요.

화장이 끝나고 수습한 유골도 확인했어요. 전부 고운 가루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크고 작은 뼛조각의 모양이 남아 있었어요. 보고 싶다는 마음과 보기 어렵다는 마음이 같이 들더라고요. 남편이 먼저 고개를 숙여 보고, 저는 조금 늦게 가까이 갔어요.

저희는 스톤으로 받기로 했기 때문에 이 상태에서 분골하지 않고 제작을 이어갔어요. 기다리는 동안 남편과 사진을 다시 봤어요. 방금 전까지는 장례 사진이었는데 화면을 몇 번 넘기니 이불 위에 앉아 있는 아이가 나왔어요. 갈색 털이 쿠션 여기저기 묻어 있다고 투덜댔던 것도 생각났어요. 이제는 그 털 한 올도 아깝네요.

작은 알들을 보고 나서야 집에 갈 준비를 했어요

스톤 제작이 시작되고 약 한 시간 뒤에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작은 보관 용기 안에 도톰하고 둥근 알들이 놓여 있었어요. 똑같은 모양으로 찍어낸 것 같지는 않았고, 밝은 아이보리빛 사이에 연한 꿀빛이 섞여 있었어요. 저희가 고른 색은 아니에요. 그날 아이의 유골로 만들어진 모습이었어요.

처음에는 유골함이면 충분하겠다던 남편도 한참 들여다봤어요. 그러더니 “집에 가서 어디에 둘까?” 하고 묻더라고요. 그제야 저도 가방을 챙겼어요. 스톤을 받았다고 마음이 놓이거나 덜 보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둘이 같이 보고 자리를 정할 수 있는 게 저는 좋았어요.

집에 와서는 우선 식탁 위에 놓았어요. 남편이 손끝으로 용기 가장자리를 살짝 돌려놓고, 저는 맞은편에 앉아 봤어요. 소파 옆 낮은 자리로 할까 하다가, 둘 다 오가며 볼 수 있는 거실 선반 쪽으로 정했어요.

얘야, 엄마 아빠가 네 사진을 고르다가 또 같은 얘기를 했어. 소파 가운데가 그렇게 좋았냐고. 네가 누울 만큼 자리를 벌려 앉던 게 습관이 돼서, 오늘도 둘이 한쪽씩 비워두고 앉았네. 열세 해 동안 같이 살아줘서 고마워. 많이 보고 싶어.

글을 쓰다 보니 남편이 식탁 쪽으로 왔어요. 아까 보던 이불 위 사진을 한 번만 더 보여달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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